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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소액주주 보호를 목적으로 한 ‘상법 일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기업 지배구조에 중대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이 개정안은 ‘3% 룰’ 도입과 함께 소액주주 권한 강화를 위한 첫 단추로 평가받지만,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아직 입법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상법개정안의 핵심 내용과 배경, 정치권과 재계의 입장, 그리고 향후 법안 논의 방향까지 정리해드립니다.
1️⃣ ‘3% 룰’ 담은 상법개정안, 무엇이 달라졌나?
2025년 7월 3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소액주주 보호를 강화하고, 한국 주식시장에 만연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입니다. 기존 상법에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가 ‘회사’에만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회사와 주주’**로 범위가 확대됐습니다. 이는 기업 합병, 분할 등의 경영 결정 과정에서 대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소액주주의 권익까지 고려하라는 취지입니다.
둘째, ‘3% 룰’ 도입입니다. 이는 회사의 회계와 경영을 감독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과 상관없이 최대 3%까지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규정입니다. 대주주의 의결권 남용을 방지해 감사위원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3% 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여전히 이사회 구성은 대주주 중심으로 이뤄지며, 소액주주의 실질적인 권한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입니다. 이에 따라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같은 추가적인 제도 개편 요구가 나오고 있는 배경입니다.
2️⃣ 집중투표제 의무화, 왜 빠졌고 왜 중요한가?
이번 상법개정안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제도 중 하나가 집중투표제(Cumulative Voting) 의무화입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가진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서 행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선출할 때, 1주당 3표를 부여받아 한 명의 후보에게 몰아주는 것이 가능해지므로 소액주주도 이사회 진입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여야 협의 과정에서 최종 제외됐습니다. 재계와 국민의힘 측에서는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될 경우, 소액주주 또는 외국계 자본이 연합해 이사회를 장악하고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특히 자산 2조 원 이상의 대기업에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할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기업의 핵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이사회 안건이 99% 이상 원안대로 통과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현실”을 들어, 형식적 이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집중투표제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상장기업 이사회 안건의 99.4%가 원안대로 가결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현재의 이사회는 대주주의 ‘거수기’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여당은 7월 중 추가 법안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며, 향후 공청회 등을 통해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방안을 포함한 ‘상법개정안 2라운드’가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3️⃣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 배경과 쟁점은?
‘상법개정안 2라운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슈 중 하나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입니다. 자사주란 회사가 자사의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이는 유통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끌어올리는 수단이자 주주환원의 한 형태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장기 보유하며 이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는 점입니다. 특히 한국의 상법상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을 통해 우호세력에 지분을 넘기거나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여당은 자사주 소각을 법제화하여, 자사주 매입의 본래 목적(=주주 환원)을 실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자사주를 1년 이내 소각하거나, 보유 상한을 10%로 제한하는 방안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습니다. 현재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약 80%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어, 실질적인 제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반면 재계는 “자사주는 현실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적대적 M&A 시 자사주 매입이 방어의 수단이 될 수 있고, 이를 소각하게 되면 기업이 방어 수단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차등의결권, 황금주, 포이즌필 등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병행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4️⃣ 배임죄 완화 요구와 재계의 ‘경영권 침해’ 우려
상법 개정과 함께 재계가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슈는 배임죄의 완화 또는 경영상 판단 원칙의 법제화입니다.
배임죄란 타인의 사무를 맡은 자가 자신의 의무를 위반하여 타인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는 경우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기업 경영인의 입장에서 보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경영 판단이 실패로 끝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인 것입니다.
재계는 상법 개정으로 인해 일반 주주들이 배임 혐의로 이사를 고소할 가능성이 증가하고, 이사회 운영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배임죄는 형법과 상법 등에서 중복 적용될 수 있어, 지나친 법적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이에 따라 재계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법률에 명시하자”는 요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경영자가 합리적인 판단과 절차에 따라 결정했다면, 설사 결과가 손해로 이어지더라도 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원칙입니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은 이미 이 원칙을 제도화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 같은 선례를 따르자는 주장입니다.
✅ 마무리 코멘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분수령
이번 상법개정안은 단순히 ‘주주 권익 보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주식시장 전반의 신뢰 회복과 가치 재평가라는 큰 흐름 속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당은 상법개정안의 후속 조치로 집중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소각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후속 입법을 서두르고 있으며, 재계는 이에 대한 방어 전략으로 차등의결권 및 배임죄 완화 등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균형 있는 제도 설계입니다. 소액주주 보호와 시장 투명성 제고라는 명분이 실현되면서도, 과도한 규제가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합니다.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한국 주식시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코스피 5000 시대’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제도적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